말씀 : 나중이 창대해지는 비결(2)
본문 : 욥기 8장 8- 22절
청컨대 너는 옛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 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한 인간의 깊이는 역경의 깊이와 비례한다. 역경은 사람의 품을 넓게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역경을 통해서 서서히 강해집니다. 역경은 인생을 강하게 하면서도 유연하게 만들어 줍니다.
인생 승리의 비결은 강함만으로는 안됩니다. 버드나무처럼 부드러워야 하고 활처럼 유연해야 합니다.
욥은 역경을 통해서 강해져갔고, 더욱더 부드럽고 유연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7절)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소생할 희망이 전혀 없는 욥의 가정을 향해 친구 빌닷이 선포한 말입니다. 말씀대로 욥은 나중이 창대했습니다.
이사를 하다보면 쓰지 않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버려야 하는데 끌고 다닙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을 묶은 이삿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의 복이 무엇입니까? 은혜 받는 순간 다 털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을 실패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 출발 할 수 있습니다.

빌닷은 욥에게 두 가지를 하라고 말합니다.
5절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케 하실 것이라”
하나는 부지런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석고 뭉치와 같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윤곽을 깍아 가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자꾸 듣게 되면 서서히 눈이 생기고 귀가 생기고 코가 생겨갑니다.
또 하나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빌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내속에 가득한 의문점들을, 답답한 것들을, 힘든 것들을 계속 기도로 풀어내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아픔과 상처를 토해내야 합니다. 자꾸 소리를 내어 기도하면 좋습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사41:17)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 속을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과거를 다루십니다. 그리고 미래를 만드십니다.
열등감들, 아픔들을 토해 내고 기도하면 속이 새로워집니다.  
자신의 모습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우리의 속을 성결하게 만들어가십니다.
욥은 이렇게 했습니다. 말씀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하나님께 빌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욥은 이 연단을 통과했고, 전보다 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이 세상의 복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습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시119:92-93).
말씀을 가진 자가 복있는 부자입니다.

인생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9절)
처음에는 대단한 일을 해낼 것 같았는데 다 살고나면 아무것도 남은것이 없습니다.
결혼 전까지는 공부한다고 시간 다 보냅니다. 결혼하면 먹고 사느라고 보냅니다.
돈 버느라고 시간 다 써버립니다. 그렇게 50을 넘기게 됩니다. 자녀들은 하나 둘 짝을 지어 떠납니다.
어느새 허전하게 텅빈 거실 공간에 둘만 앉아 있게 됩니다. 인생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우리에게 빌닷이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는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지 아니하겠느냐”(10절)
성경대로 살아본 사람에게 배워야 합니다. 솔로몬에게 배웁니다. 해 아래 있는 것은 다 헛된 줄 알아야 합니다.
욥에게 배워야 합니다. 고난은 잠깐이면 지나가고 고난 훈에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빌닷은 낭비하는 인생의 무가치함을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왕골인생입니다.
11절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 12 이런 것은 푸르러도 아직 벨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찌기 마르느니라”
왕골 갈대는 어디서 납니까? 진펄에서 납니다. 빨리 자랍니다. 사람의 키를 넘겨서 자랍니다.
그런데 빨리 시듭니다. 왜냐하면 알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빨리 자라고 푸르지만 아무도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알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억새풀이 아름답다 들풀이 아름답다 말하지만 실상은 아무도 들풀을 키우기 위해 땅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알곡이 아니거든요.
13절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같고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이것이 왕골 인생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소망이 없습니다.
말씀을 먹고 살아야 알곡이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알곡이 됩니다.

두 번째는 거미줄인생입니다.
14-15절에 “그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 즉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거미줄의 목적은 곤충을 걸려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한번 걸리면 퍼덕퍼덕 거리다가 잡아 먹힙니다.
곤충들에게 있어서 거미줄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코뿔소가 한번 지나가면 거미줄은 없어져 버립니다.
거미줄과 함께 거미마저 휩쓸려 뭉게집니다. 거미줄로는 가치 있는것을 붙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미줄같은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기초가 약합니다. 홍수가 나면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의 생명까지 위험합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말씀을 기초로 사는 인생입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지어진 관계가 정말 튼튼한 가정이고 흔들리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총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학교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선생님들에게는 제자들을 향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무섭지만 사랑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을 먹는 제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확실하고 영원한 것은 오직 말씀과 사랑입니다.

세 번째는 식물인생입니다.
16절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 그 뿌리가 돌 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지라도 그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 하리니 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리라”

사람들은 식물이 영원한줄 압니다. 아닙니다. 3200년을 사는 나무도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식물이 햇빛을 받으면 뻗어갑니다. 새싹이 난다는 말입니다. 새싹은 뿌리와 하나입니다.
새싹이 나와 뻗어간다는 것은 뿌리가 건강하고 튼튼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뿌리가 뽑히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리 오래된 나무도 새싹이 나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결국 나무에게 중요한 것은 새싹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싹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새싹 같은 믿음이 피어야 합니다. 새싹처럼 싱싱한 성도의 생기가 나타나야 합니다.  
크리스찬 다운 언어의 새싹이 나야 합니다. 성도다운 따뜻한 마음의 새싹이 나야만 합니다.
교회는 오늘도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구원의 새싹이 피는 곳입니다.
교회가 새싹을 내려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 맺는 사람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새싹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20-21절“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웃음으로 네 잎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순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거짓이 빠져나간 사람입니다. 고난을 받아서 위선이 빠져 나간 사람입니다.
순전한 사람은 용서와 사랑이 있습니다. 이해가 있습니다. 넓은 마음이 있습니다.
연단 안받은 사람은 뭔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습니다.
사람을 헷갈리게 합니다. 겉은 번지르한테 속은 자신도 모르는 세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연단을 받은 사람들은 투명합니다. 위선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돌이 아니라 보석이라 부릅니다. 이런 사람에게 기쁨을 채워줍니다.
즐거운 소리로 채워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빌닷은 욥을 격려합니다.
22절에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빌닷은 욥이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원망할때는 가차없이 책망도 합니다.
너의 자식들은 죄가운데 태어나서 죄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복음의 본질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가면 오늘 말씀 끝 자락에서 그래도 욥의 신앙을 격려하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욥의 모습에 채워지는 기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연단을 통해서 보석으로 만들어져 가는 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즐거움이 채워지고 있음이 보였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지 전보다 어려움을 당하고 난 뒤에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보석으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 보석으로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명예. 보석이 아닌 사람이 지닌 그 무엇도.
다 없어질 것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생각에 빠지지 말고 말씀으로 돌아오라입니다.
성경속에서 아름다운 자신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망한줄 알았습니다. 좋은 기회를 다 놓친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은 미약하지만 나중이 잘 되었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를 아시되 철저히 아셔서 먼저 세상것 주지 아니하시고 많은 눈물 흘리게 하시고 연단받게 하셔서 보석이 되게 하심을 믿사옵나이다.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불공평하게 사랑하셨는지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