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2009년 가정의 달 - 무엇이 우선일까요?
본문 : 마태복음 10:34-39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네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버리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숯불도 재를 털어야 빛이 나듯이 부부 사이도, 자녀사이도, 친구사이도, 이웃사이도 허물을 털면 사랑이 빛나는 것입니다.

가정은 천지창조 이후 제일 처음으로 탄생한 공동체입니다. 또한 가정은 인간의 삶에 가장 기초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공동체로 가정을 만드신 것은 그 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가정’ 이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위축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족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없이 이미 오래전에 홀로 남아 계신 분들이 그렇습니다. 또한 부득이한 일로 가정에 상처를 입은 분들이 그렇습니다. 부부에 대해 말할 때, 홀로 사는 분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녀에 대해 혹은 부모에 대해 말할 때, 자녀가 없거나 부모가 없는 분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가정의 달 말씀에서는 그런 분들이 오히려 힘을 더 얻는 기회가 되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육신의 가족을 넘어서 하나님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이 우선입니다!
여러분에게 여쭈어 봅니다. 교회가 우선입니까, 가정이 우선입니까?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가정이 우선입니다. 태초에 가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가정 단위로 드렸습니다. 가정의 가장이, 혹은 부족의 족장이 제사장 역할을 했습니다. 가정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왜 가정이 아니라 교회가 우선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가정의 일과 교회의 일이 서로 대립할 때, 교회 일을 우선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목회가 교인들의 영적 성장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데, 교회 성장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가정은 교회로 인해 심한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보다 교회 일을 우선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는 책임을 모두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이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잘 못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가정 일을 내버려두고 교회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 가정 일에 소홀히 하고, 그 빈자리를 교회 일로 메우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욕심에 따라 행동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것으로 정당화시킵니다.

아내를 대하기 싫어서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들. 남편을 대하기 싫어서 교회 일에 몰두하는 아내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잦은 싸움으로 인해 집 밖으로 떠도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집안에서 해야 하는 허드렛일이 싫어서 교회에서 하는 ‘사역’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일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닌데, 아이들 형편이 말이 아닌데, 부부 관계가 말이 아닌데,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밖으로 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례 : 폴 스티븐스(Paul Stevens)가 쓴 <영혼의 친구, 부부>(Marriage Spirituality)라는 책에서“진정한 사역은 부부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역을 통해 부부가 서로를 더 깊이 알고 사랑하는 결과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도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역도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사역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흘러 넘쳐 나와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빈 곳을 채우기 위한 사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야망을 이루기 위해, 혹은 내 취미 생활을 위해, 혹은 내 공명심을 채우기 위해 행하는 사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내 안을 채움으로써 흘러 넘쳐야 비로소 올바른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역할 때, 그 사역은 가정이나 가족에게 짐이 되거나 상처를 입히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부부의 사역 그리고 가족 전체의 사역으로 인해 가정이 더 화목해지고 행복해지며 온전해집니다. 만약 교회에서의 사역으로 인해 가정생활이 더욱 더 악화되어 간다면, 잠시 멈추어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가 우선입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교회가 우선입니까, 가정이 우선입니까? 가정이 우선이라구요?
 "교회가 우선입니다". 가정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모습대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가정의 참된 회복이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우선이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예수님의 말씀은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습니다. ‘평화의 왕’이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34절). 참,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칼을 들고 서로 맞설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맞설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36절)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만 떼어 놓고 보면, 기독교는 가정을 해체하고 파괴시키는 종교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을 곡해하여 가족을 원수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볼 때, 두 가지의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왜 가족이 갈라지게 되느냐?"는 질문입니다. 37절 이하에 그 답이 나오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원인입니다. 둘째 질문은 "자기 가족을 원수시 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입니다. 문맥을 보면, 가족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 믿지 않는 가족들이 믿는 가족을 원수로 여기고 배척한다는 뜻입니다. 믿는 가족이 믿지 않는 가족을 원수처럼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가족을 미워하거나 원수시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은 인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만, 그 감정을 그대로 두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감정을 품고 있어는 안 됩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자신을 원수처럼 대하는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믿지 않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갈 때, 처음에 일어날 수 있는 혼란과 갈등과 아픔을 예고해 줍니다.

그런 혼란과 갈등과 아픔을 견디지 못해 믿음을 포기하면 그 사람은 영생을 잃어버립니다. 37절에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아버지께서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아버님의 뜻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문제를 참되게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고통이 두려워 수술을 하지 않으려는 환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가족 모두가 믿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기도하며, 박해를 견디고, 선한 행실로써 진리를 드러내는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8절에서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가정이 있었습니다만, 가정 이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정보다 먼저입니다. 아담에게 있어서, 하와보다 하나님이 먼저였습니다. 하와에게도, 아담보다 하나님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의 삶의 기초이며, 가정생활의 기초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온 가정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복음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세워질 때, 가정은 제대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둘 다 우선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한 번 더 여쭙니다. 교회가 우선입니까, 가정이 우선입니까?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까? 그게 정답입니다. "교회가 우선입니까, 가정이 우선입니까?"라는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만큼이나 잘못된 질문입니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도 잘못됩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잘 해야 합니다. 똑똑한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둘 다 좋아"라고 답합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러면 알아듣고 질문을 멈춰야 하는데, 어리석은 부모는 굳이 또 묻습니다. "에이, 그래도, 더 좋은 사람이 있을 거 아냐? 누구야, 응? 누가 더 좋아?"라고 따져 묻습니다. 명석치 못한 아이는 이 순간에, "부모 중 어느 한 편을 택해야 하는 거구나!"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교회가 우선입니까, 가정이 우선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둘 다 우선입니다"가 맞습니다. 교회와 가정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은 함께 가야 합니다. 교회의 삶을 통해 가정이 회복되어야 하고, 가정의 회복은 다시 교회를 통한 사역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더 큰 가정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고리는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태초에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가정은 참된 사랑과 이해와 용서와 용납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참된 쉼이 있고, 참된 위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졌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곳, 서로 상처 주는 곳, 서로 미워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쉼이 없고, 더 이상 위로가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가장 먼저 우리 개인에게 일어나야 하고, 그 다음 우리 가정에 일어나야 합니다. 깨어진 가정들이 태초의 가정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가정은 복음의 능력이 가장 먼저 나타나야 하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일이 우리 각자의 가정에 일어나도록 하십시다. 그 일을 위해 먼저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도록 힘쓰십시다. 더욱 영적 생활에 힘쓰십시다.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지 않고는 그 어떤 노력도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내 가정이 회복되려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변화가 내 배우자에게, 내 자녀들에게, 형제들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파급되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성 생활의 신비입니다. 한 사람이 진실하고 일관되게 영적 생활을 해 나갈 때, 그 사람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그 영향력이 미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의 영적 감화력에 이끌려 변화되어 갑니다. 때로 시간이 걸리지만, 이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실례 : 1889년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크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사교생활에 빠져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아이를 알콜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도망갔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글력분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1933년 독일 국민의 절대 지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로 그로 인해 독일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고,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수 많은 인류가 그가 내뿜은 독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같은 해 다른 한 아이는 미국 택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운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 교회의 가장 성실한 봉사자였습니다. 이 소년은 청년이 되어 웨스프 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샜습니다. 그가 바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입니다.
1944년 6월 6일 이들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만나게 됩니다. 11개월에 걸쳐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하나는 정복을 위해 싸웠고, 한 사람은 평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끓었을때 전 세계가 박수를 쳤습니다. 1969년 80세의 나이로 평화롭게 눈을 감은 아이젠하워의 죽음 앞에 전 세계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힘입니다. 가정의 열매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실례 : 삼풍 백화점 참사가 언제 일어났는지 기억속에서 조차 잊혀지고 있습니다. 무덤과도 같은 생존공간에서 살아남은 세 젊은이들의 투지와 끈질긴 생명력은 온 국민을 환호하게 했던 순간입니다. 377시간 20분 만에 구조된 박승현양, 마치 진흙탕에서 뒹굴다 온 개구쟁이처럼 싱싱하게 살아나와서는 절망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를 깨우쳐 주었던 최명석군,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선 누가리개를 살며시 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던 유지환양. 저들이 살아 날 수 있었던 기적의 이유는 두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의지가 강하고 밝고 긍정적인 성경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건강한 가정이 배경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위해 진학을 포기한채 부모를 배려한 젊은이였습니다. 5년째 병석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간호하면서도 직장 생활에 충실했던 젊은이였습니다. 직장동료들조차 칭찬을 아끼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가 친척들이 대가를 이루고 가문의 사람들이 우애가 깊고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수해복구든지 재해 복구에는 어김없이 대가족이 출동해서 선행으로 봉사하는 가문이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