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세계로의 여행(12) / 하늘의 편지를 수령하라
본문 : 요한복음 3장 31-36절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사람의 뇌 속에는 여러 종류의 뇌파가 발산됩니다. 깨어있는 낮 동안에는 몸에 해로운 베타(β)파가 나옵니다.이것은 100%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뇌파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듣고, 보고, 오락과 취미 생활을 한다고 해도 남는 것은 점점 스트레스와 피곤이 쌓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는 알파(α)파가 발산되어 나옵니다. 그러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것은 모든 병을 고치는 기적의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깨어 있을 때에도 알파(α)파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한 관계의 사랑을 할 때라고 합니다. 사랑할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바로 뇌 속에 알파(α)파가 나오면서 동시에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삶은 엔돌핀의 생성을 촉진하는 건강한 사랑이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병도 빨리 낫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움직이면 피로를 모릅니다. 어두운 마음을 던져버리고, 걱정과 염려를 향해 내게서 떠라나 외치십시오. 사랑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진실한 삶을 살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 "다이돌핀" 이 있습니다.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돌핀의 4,000배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이 다이돌핀은 언제 우리 몸에서 생성될까요? 바로 "감동 받을 때"입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엔돌핀, 도파민, 세로토닌 등 유익한 호르몬과 함께 다이돌핀의 세계가 열립니다. "다이돌핀"은 신비의 영역에서 발산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입니다. 믿음의 영역입니다. 감사의 영역입니다. 다이돌핀의 주인은 바로 내 안에 계신 성령과 말씀이 만나 영적인 운동을 일으키며, 내 오감을 통제하고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위해 헌신할 때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다이돌핀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수여되는 하늘의 치료약인 것입니다.

하늘의 편지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늘에서 온 소식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낼때 "어떻게 보내시겠어요?"라고 묻습니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냐 보통이냐! 받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주소대로 편지함에 놔두면 되느냐 아니면 받는 사람의 싸인을 받는 것으로 보내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얼마 전 집사님 한 분이 자기 집에 손님이 와서는 물건을 사가지고 같는데, 믿고 외상으로 주었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편지를 띄웠습니다. 우체부가 직접 배달해서 수취인의 서명을 받아오는 편지였습니다. 돈을 안내려고 수취인이 거부하더라는 것입니다. 실례 : 어느 정치인에게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 속에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목숨이 달린 중요한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피곤하다고 편지 읽는 일을 내일로 미루었다가 그날 밤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 내용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안부편지가 아닙니다.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내용이 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 철학이나 자기 견해가 아닙니다. 이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그가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32절)."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받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파하는 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대단한 설교라고 감탄은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보내어진 등기편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다 하는 평범한 말로 생각했습니다. 이 편지를 수령하십시오.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침받은 도장을 가지고 마음으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진정한 고백이 있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복음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흘러야 합니다. 멈추면 안됩니다. 말씀은 마음에서부터 깨달음으로 운동을 일으킵니다. 감격하게 합니다. 다이돌핀을 생성해줍니다.  

둘째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시는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성령이 한량없다함은 흘러넘침을 말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 안에 있을 때 능력이 창일해집니다. 말씀 속에 배어있는 능력이 운동을 시작합니다. 말씀이 성령과 만날 때 불을 일으킵니다. 뜨거움을 일으킵니다. 이런 일이 내 가슴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잠언 17장 22절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어느 분이 별로 중한 병이 아닌 줄 알고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검사 후에 여러 명의 의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시작합니다. 이 광경을 보는 환자의 마음은 벌써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한 의사가 병실 문을 노크합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벌써 후회를 합니다. 의사의 말을 듣지도 않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이미 진단결과가 요동합니다. 그때 술을 끊었어야 하는 것인데, 그때 담배를 끊었어야 하는 것인데, 그때 그만두었어야 하는 것인데, 하며 온갖 후회스러운 사실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의사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역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합니다. 온 가족이 통곡을 합니다. 그런데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는 환자들을 지켜 볼 기회가 있습니다. 대부분 얼굴이 창백합니다. 마치 죽으로 들어가는 듯한 얼굴들입니다. 오늘도 성 삼위 하나님께서 회의를 하시고 그 결과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가지고 오신 결과통보가 담긴 편지를 뜯어서 수령해야 합니다. 노아때도 그렇고, 소돔과 고모라때도 그렇고 초대교회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멸하리라, 소동성을 멸하리라, 예루살렘을 멸하리라는 메시지가 선포되기 직전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리스도가 보내심을 받기 직전까지 인간들은 행복했습니다. 아무도 자신들의 병이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전혀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질병이랍니다. 이런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시는데도 그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다’하면서도 자신의 인을 치는 자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이런 서명없이 예수를 믿기 원합니다. 교회에서 일시적으로 달콤한 위안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 설교하면 표정이 굳어지고 안색이 변해버립니다. 나는 그렇게 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서명을 거부합니다. 성도들이여! 가만히 앉아서 설교만 듣고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의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으세요.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던 혈루증 여인처럼 그분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신 편지에 마음으로 싸인을 하는 순간 내 속에서 다이돌핀이 폭발합니다. 할렐루야! 예레미야 30장 19절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치 아니하겠으며"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셋째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아들이 이루어 놓은 귀한일을 헛되지 않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 오셨습니다. 죄인을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편지로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이 약속은 무효다!”라고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오는 자들의 구원은 영원히 취소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니까요! 예수님은 단순한 편지 배달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 편지의 내용대로 내가 죽어야할 그 자리에 가셨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죽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 구원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아들이 한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는 결단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무효가 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받아들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34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아직도 우리가 원수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고도 마음으로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복음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졸고 있습니다. 여기서 돈버는 이야기를 하면 정신이 번쩍 뜨일 것입니다. 여기서 병낫는 이야기를 하면 기를 쓰고 다른 사람들을 제쳐 가면서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참되심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음을 열고 들어주세요. 성령의 인치심을 간절히 구하면서 이 편지에 여러분의 인을 치세요. 오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로부터 충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성령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예수님께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하셨습니다. 한순간도 부족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일으키실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다이돌핀이 폭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영생이 없습니다.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영원한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의 충만을 모른체 말씀을 거부하고 살아갑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일만을 위하여 좇아갑니다. 지금은 행복해 보입니다. 말씀은 거부한채 살면서도 지금은 좋은 옷도 입고, 좋은 집도 사고, 좋은 차도 타고, 돈도 마음대로 씁니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입니다. 아쉬운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머물러 있습니다. 언제 그 위에 쏟아질지 모릅니다. 지옥이 있습니다. 뜨거운 유황으로 타는 불못이 있습니다.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여러분은 진정한 고백이 있습니까? 나의 철저한 죄성을 고백했습니까? 교만한 마음과 회개치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아직도 가지고 사십니까? 오늘날 우리 교회는 고백이 없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도 진정한 고백이 없이 세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죄성으로 고민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자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빨리 축복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로만 교회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의 사람은 불신자들의 행복을 보고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놀라운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사랑하심을 맛보면서 감사해서 울고 또 우는 사람입니다. 예배 보는 한 시간을 지겨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영원히 그런 분위기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자기 욕심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찬송 부르는 한 두 시간이 지겨운 사람이 어떻게 영원히 찬송을 부르면 살아야할 천국생활에 적응할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살면서 한 두 번 만나는 것으로도 갈등을 일으키고 싸우고 다투면서 어떻게 천국에서 영원히 살겠습니까? 지옥은 서로 알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서는 찬송도 없고 예배도 없습니다. 그저 영원토록 고통가운데서 삽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욕지거리를 해 가면서 지낼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아 보입니까? 안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오늘 복음을 듣고 거기에 혈서를 쓰세요. 자기 이름을 적고 하나님은 참되시다 고백하십시오.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죄를 대신하는 죽음이라는 것을 선포하세요. 성령의 힘으로만 새로워 질 수 있다고 고백하시고 외쳐보세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나는 늘 교만했고 악독했다고 고백하십시다. 그때 바로 그때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질 것입니다.